솔직히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지금 이 시간이면 나는 당연히 병원에 가서 앓고 계신 시모님의 퉁퉁 부은 손을 주무르며
거칠게 호흡하시는 모습에 안타까와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30일 늦게까지 병원에 있다가 의사샘이 '그냥 집에 가 있으라. 상태가 나빠지면 즉시 연락을 하겠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왔고, 잠자리에 든 30분 가량을 어지러운 꿈 속을 헤매다 2시 30분경에 전화를 받았다. 정신없이 달려가 병실에 들어서니 간호사가 맥박이 느려지고 있다며 설명을 하고, 채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임종을 알리고 한 발 늦게 남편이 병실로 들어섰다.
'2시 45분'이라며 임종시간을 얘기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결국 나 혼자라도 임종을 지킨 셈이라고 억지로 갖다붙일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며느님이 오시길 기다린 모양이다'고 간병하시는 분이 내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
얼굴을 만지니 아직 따뜻하기만 한데 퉁퉁 부은 손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그 병실에서 몇 분의 임종을 본의 아니게 지켜본 셈이고, 요 며칠 새론 거의 하루에 한 분씩 가시는 것을 봤음에도 나는 도저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단 비어있던 병실로 옮기고, 오래 전에 의사가 고비라고 얘기했을 때 준비해 두었던 속옷과 팔순 때 입으셨던 한복을 입혀드렸다.
정말 돌아가신 분이라고 믿기지 않는 평안한 모습이셔서 간병사들은 그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이 멈추니 편안해지신 것 같다고들 말하며 위로를 한다.
모두들 호상 호상이라면서 위로를 하기에 그런가 싶어 그다지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었다.
더구나 무척이나 오랫동안 고생하시는 모습을 뵈었기에 오히려 편하신 모습으로 누우신 것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시어머님을 위한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는 문득 문득 남의 일에 주인으로 앉은 듯한 어색한 마음이 되고, 당장이라도 위의 병실로 가면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내가 왜 여기 이렇게 있나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오랜동안 편찮으신 분도 고통을 멈추셨고, 오랫동안 매였던 일에서 벗어났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위로를 하니 그 위로에 덩달아 춤을 춘 격이 되어버렸다.
자녀들은 물론 친지나 고인의 친구분들까지 이젠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셨으니 호상이라며 위로를 하시니, 이 덜 떨어진 며느리라는 사람은 슬픔보다 안도의 마음이 되었는지 표정관리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문득 생각하니, 병원을 드나드는 동안에도 주차장 아저씨나, 관리하시는 분들을 뵐 때마다 인사를 했더니, 그 분들이 나를 보면서 힘든 내색도 없이 매일 몇 차례를 드나들면서도 환하게 웃는다며 언제나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위로를 하시곤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나도 꽤나 철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일상화되어버린 일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고인은 그동안의 고통 속에서 놓이셔서 평안히 극락왕생하셨으리라 믿는다만 이렇게 모든 일이 갑자기(?) 일단락 되어 조용한 시간에 혼자 앉았자니 울컥 죄송스러운 마음과 기타의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아주 묘한 기분이 된다.
이런 것이 허탈하다는 것일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차츰 허탈해지면서 그동안의 일들이 하나씩 정리가 될 것이라'고 한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위로를 한다.
호상(好喪)이라.....
참으로 착찹한 표현이다.
그건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오랫동안 병원을 드나들면서 고통 속에서도 편히 가시지 못하는 분들로 해서 가슴이 꽤나 아팠었고, 위중한 병으로 누우신 많은 분들이 좀 편해지셨으면 하는 바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떠나보내드리고나니 그 많은 위로들이 내 가슴에서 공허하게 흩어진다.
10년 세월이라면 길다면 긴 세월이겠지.
그 10년, 시어머님과 내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지가 10년이고, 고부라는 인연을 맺은 것이 23년이란 세월이니...........
이러저러한 위중한 병환들로 서너 해 투병생활을 함께 하면서 어머님과 내가 엮어왔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문득 저 건너 방에서 '야야, 지저구(기저귀) 좀 갈아도라'고 부르실 것만 같다.
지금 이 시간이면 나는 당연히 병원에 가서 앓고 계신 시모님의 퉁퉁 부은 손을 주무르며
거칠게 호흡하시는 모습에 안타까와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30일 늦게까지 병원에 있다가 의사샘이 '그냥 집에 가 있으라. 상태가 나빠지면 즉시 연락을 하겠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왔고, 잠자리에 든 30분 가량을 어지러운 꿈 속을 헤매다 2시 30분경에 전화를 받았다. 정신없이 달려가 병실에 들어서니 간호사가 맥박이 느려지고 있다며 설명을 하고, 채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임종을 알리고 한 발 늦게 남편이 병실로 들어섰다.
'2시 45분'이라며 임종시간을 얘기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결국 나 혼자라도 임종을 지킨 셈이라고 억지로 갖다붙일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며느님이 오시길 기다린 모양이다'고 간병하시는 분이 내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
얼굴을 만지니 아직 따뜻하기만 한데 퉁퉁 부은 손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그 병실에서 몇 분의 임종을 본의 아니게 지켜본 셈이고, 요 며칠 새론 거의 하루에 한 분씩 가시는 것을 봤음에도 나는 도저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단 비어있던 병실로 옮기고, 오래 전에 의사가 고비라고 얘기했을 때 준비해 두었던 속옷과 팔순 때 입으셨던 한복을 입혀드렸다.
정말 돌아가신 분이라고 믿기지 않는 평안한 모습이셔서 간병사들은 그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이 멈추니 편안해지신 것 같다고들 말하며 위로를 한다.
모두들 호상 호상이라면서 위로를 하기에 그런가 싶어 그다지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었다.
더구나 무척이나 오랫동안 고생하시는 모습을 뵈었기에 오히려 편하신 모습으로 누우신 것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시어머님을 위한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는 문득 문득 남의 일에 주인으로 앉은 듯한 어색한 마음이 되고, 당장이라도 위의 병실로 가면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내가 왜 여기 이렇게 있나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오랜동안 편찮으신 분도 고통을 멈추셨고, 오랫동안 매였던 일에서 벗어났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위로를 하니 그 위로에 덩달아 춤을 춘 격이 되어버렸다.
자녀들은 물론 친지나 고인의 친구분들까지 이젠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셨으니 호상이라며 위로를 하시니, 이 덜 떨어진 며느리라는 사람은 슬픔보다 안도의 마음이 되었는지 표정관리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문득 생각하니, 병원을 드나드는 동안에도 주차장 아저씨나, 관리하시는 분들을 뵐 때마다 인사를 했더니, 그 분들이 나를 보면서 힘든 내색도 없이 매일 몇 차례를 드나들면서도 환하게 웃는다며 언제나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위로를 하시곤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나도 꽤나 철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일상화되어버린 일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고인은 그동안의 고통 속에서 놓이셔서 평안히 극락왕생하셨으리라 믿는다만 이렇게 모든 일이 갑자기(?) 일단락 되어 조용한 시간에 혼자 앉았자니 울컥 죄송스러운 마음과 기타의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아주 묘한 기분이 된다.
이런 것이 허탈하다는 것일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차츰 허탈해지면서 그동안의 일들이 하나씩 정리가 될 것이라'고 한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위로를 한다.
호상(好喪)이라.....
참으로 착찹한 표현이다.
그건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오랫동안 병원을 드나들면서 고통 속에서도 편히 가시지 못하는 분들로 해서 가슴이 꽤나 아팠었고, 위중한 병으로 누우신 많은 분들이 좀 편해지셨으면 하는 바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떠나보내드리고나니 그 많은 위로들이 내 가슴에서 공허하게 흩어진다.
10년 세월이라면 길다면 긴 세월이겠지.
그 10년, 시어머님과 내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지가 10년이고, 고부라는 인연을 맺은 것이 23년이란 세월이니...........
이러저러한 위중한 병환들로 서너 해 투병생활을 함께 하면서 어머님과 내가 엮어왔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문득 저 건너 방에서 '야야, 지저구(기저귀) 좀 갈아도라'고 부르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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