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은 나를 반기며...
금요일 퇴근 후 집에 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미리 챙겨둔 짐을 재점검했다.
설레는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
배부르게 저녁을 챙겨먹고 버스를 타고 구포역 정류장에 내려서 역으로 향하면서도 뭔가 빠진 듯한 기분.
30여분이나 일찍 도착하니 별로 할 일도 없고 하여 주변 편의점에 가서 이온음료 하나와 초코칩쿠키를 하나 샀다.
그것으로 그냥 가기엔 뭔가 아쉬운 마음에 소풍 기분을 한껏 냈다.^^
2번 플래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게 몇 번째 나홀로 여행인가... 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마음과 어색한 기분은 여전하다.
기차에 오르니 예매한 좌석이 잘못 선택되었음을 알았다.
내 생각과는 반대로 좌석이 지정되어 있었던 것.
59번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57번으로 바꿨던 것이 잘못이었다.
동쪽으로 앉아야 바다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이 기차의 묘미인 것을....ㅜㅜ
그래도 일단 혼자 두 좌석을 독차지하여 갈 수 있음은 다행.^^
걱정보다 편한 좌석이었다.
지난 번 홍도 여행 때 순천에서 탔던 기차는 완전 옛날 좌석으로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8시간의 긴 기차여행~~
엠피로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시간은 빨리 흘러가 주질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다리를 뻗었다가 오므렸다가...
앞 좌석의 두 남녀가 내리고 났음을 알고는 좌석을 돌려 다리를 쭈욱~~ 뻗고 앉으니 얼마나 편한지...
두어 역을 지나자 한쌍의 남녀가 타더니 나를 내려다 본다.
오메~~
얼른 다리를 거두고 좌석을 돌리도록 했다.
음료도 마시고, 쿠키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음에도 꾹 참았던 것은 잠시라도 잠을 자야겠단 생각에서였는데....
어둠 속을 한참 달리나 했더니 "엄마, 아침이야?"란 소리에 눈을 떴다.
희끄무레 날이 밝아오는 산골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잠시 잤나 보다.
쭉쭉 뻗고 높은 산, 오지 마을의 버려진 가옥들이 눈에 띄고, 부지런한 할머니의 아침 나들이도 보이고...
묵호, 동해....
동해....
출렁이는 바다 위에 붉게 솟아오른 해가 모든 피곤함을 씻기우고 벅찬 감격으로 다가왔다.
정동진...
바닷가에 세워진 역.
와글와글 젊은 사람들 틈에 선 어정쩡한 시골아줌마~~
사진 몇 컷 찍고는 모래시계공원인가로 가다가 돌아서 나왔다.
그냥....
일단 안목항을 가봐야겠다 싶어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강릉여고 앞에서 내려 갈아타라신다.
내가 생각하기론 남대천에 내려 걸어가도 되는 것인가 했었는데....^^
그냥 걸어갈 껄..... 싶을 정도로 오락가락하다가 안목항으로 가야 할 것을 오죽헌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순간적인 선택이었고, 잘못되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음에야.....ㅜㅜ
오죽헌에 내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는 순간 이게 아닌데 싶기는 했지만 기왕에 왔으니 둘러나 보자 싶어
한 바퀴를 휘휘 둘러보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왔다.
에그....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초당두부마을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님은 박...할머니 두부집인가에 나를 내려준다.
기본요금을 생각했는데 4800원이 나왔다...^^
순두부백반을 시켜먹었다.
구수한 맛에 문득 오래 전에 충청도의 이모님댁에서 맛봤던 그 순두부가 생각났다.
이모는 내가 갈 때마다, 나는 방학이면 가끔씩 들렀음, 집에서 손수 두부를 만들어 주셨다.
표고버섯요리와 두부, 이모가 늘 만들어 주시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아궁이 재 속에 묻어두었던 고구마의 그 맛은.........................................
어쨌든 아점을 든든하게 먹은 나는 경포대로 향했고 경포대의 순박한(?) 아름다움에 빠져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경포대를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고 했는데 난 거의 두어 시간을 걸었던 것 같다.
천천히 쉬엄쉬엄....
햇살은 따갑고 후텁지근한 날씨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가족들과 둘러앉아 소풍식을 하거나 했다.
여유롭게....
나는 괴나리 봇짐같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객이라기보다 산나물 뜯으러 나온 아줌마같은 모양새였으니...ㅋㅋ
그래도 꽃 사진도 찍고, 재두루미인듯한 새의 사진도 찍고, 경포대도 올라가고, 유채꽃밭도 찍고,
아름다운 꽃마리 사진도 찍으면서 경포대를 한 바퀴 돌았다.
경포대 앞 바다에 우두커니 서서 출렁이는 바다를 보고,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울 아들 생각을 했다.
유난히 물을 좋아해서, 초등 몇 학년 때 갔었던 어린이날의 임랑에서 훌러덩 벗고 바다에 들어갔던 아들 생각.
추워서 벌벌 떨며서도 찬물로 헹군 뒤 민박집에서 빌린 담요로 둘둘 말아 몸을 녹이던 아들이 어느 새 커서 군에도 가고
에미 생각을 기특하게 하는 청년이 되었다.
경포대에서 안목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니 바로 가는 게 없단다.
시내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고...
탔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이러언~~~
그러게 남대천에서 걸어갔든지, 거기서 버스를 타고 안목항부터 들렀더라면 동선이 훨씬 수월했을 것을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다시 시내에서 안목 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음에야...
왜 안목항에를 그렇게 가려고 했을까?
글쎄.....
길은 밀리고, 사람들은 북새통이고.....
그래도 일단 맛잇는 커피 한 잔 하면서 바다를 보는 여유를 누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안목까지 왔다는 사실은 좀 웃긴다.
이렇게 다시 시내를 돌아돌아 올 줄은 몰랐으니까...ㅜㅜ
느긋하게 방금 내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리필해서 또 한 잔을 마시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니 30분이다.
에그...
오나가나 버스 기다리는 시간은 30분.
일단 타고 보니, 또 다시 빙빙 돌아 시내까지 왔다가 오죽헌을 지나고 주문진 가는 길로 접어든다.
주문진.
생생한 삶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
아마도 36년 전 즈음에 한번 왔었던 주문진 해변이었지만, 해변으로 가진 않았다.
그냥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직행했다.
시끌시끌~~ 오나가나 사람 천지지만 이곳의 왁자함은 전혀 싫지 않다.
오징어순대랑 물회 등을 먹고 싶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냥 눈을 돌렸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렇게 먹고 싶었던 오징어순대는 웬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좀 마른 듯함도 그렇고....^^
역쉬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먹어야 제 맛이 날 듯한 갖가지 음식들을 눈요기만으로 덮었다.
싱싱한 수산물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지만 사 갈 수도 없고.... 하여 그것도 그냥 눈으로만 쇼핑했다.
버스를 타고 낙산으로 가야지 싶어 터미널로 향하는데 와우~~ 서쪽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나는 내립다 달리기 시작했다.
놓칠 수 없는, 너무나 멋진 석양을 제대로 보기 위해...
가슴 속에서 커다란 불덩이 하나가 저 서쪽 하늘로 향하는 것 같았다.
사진 몇 컷을 찍기는 했지만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도 차 시간이 다 되었기에 일단 터미널로 달리면서 가슴으로 붉은 노을을 쓸어담았다.
버스는 떠나려던 참이었고, 나는 차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달랬더니 승차권을 끊어 오란다.
오홈~~ 승차권은 미리 끊어뒀음을......^^
차에 오르자마자 출발~~
눈은 연신 서쪽하늘의 붉은 기운을 빨아들이기 바쁘고~~~
낙산에서 내렸다.
어느 새 어둠은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고, 배도 고프고 하여 식당으로 들어가니 손님은 하나도 없다.
주문진에서 먹고 싶었던(^^) 물회를 시켜 먹었다.
기분 탓일까? 별로................................................
찜질방에 들어가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내일 일출을 볼 수 있어야 될 건데....란 생각과 하룻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먼 추억처럼 정동진과 강릉 중앙시장, 돌고돌던 강릉 시내, 안목항의 커피, 출렁이는 파도, 경포대, 노란 유채꽃밭,
따가운 햇살....
좀처럼 잠을 청할 수 없어 뒤척이다가 일어나 앉았다가를 하고나니 희끄무레 하늘이 밝아지는 걸 보게 되었다.
얼른 씻고 짐을 챙겨 나섰다.
일출, 일출.....
바닷가에 나서니 시원한 바람이 부드럽게 온 몸을 휘감아 돌고, 동녘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는가 싶더니
붉은 해가 바다에서 스으윽~~ 나타나기 시작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바다에서 저렇게 해가 솟아나는 것은 처음이다.
바닷가에 서 있다가 전망대 쪽으로 달려갔다.
전망대에 서니 해는 수우욱 올라왔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다가 옆의 부부가 열심히 사진 찍는 걸 보다가,
문득 생각하니 아하~~ 동영상으로 찍을 걸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잠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해님~~
일단 아침부터 먹어야 했다.
그래야 오늘 계획한 설악산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달리 먹을 만한게 없었기에...
초당 순두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 맛이 있다.
초당처럼 순두부엔 아무 간도 하지 않은 채 양념장과 비지찌개가 같이 나왔다.
비지찌개가 맛있어 후딱 먹어치웠음.^^
일단은 껄그러운 입이긴 하지만, 배도 채우고 그런대로 강원도 순두부 맛도 보게 되었음을 흐뭇하게 생각하며
한계령으로 가려니 시간이 엇갈린다.
일단 버스를 타고 오색까지 가 보기로 했다.
오색에서 다시 어떻게든 해 보려고...
구비구비 아름다운 설악산의 그림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오색에서 내리니 조금은 암담하다.
흘림골 입구까지는 어떻게 갈까?
물어보니 택시를 타고 가란다.
택시를 탈까 아니면 그냥 오색부터 시작할까를 망설이고 있던 차에 한 떼으 대학생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기웃거린다.
자기네들도 흘림골로 가려고 한다며 잠시 안내를 받으며 화장실 볼 일부터 보려고 한다며....^^
흘림골까지 같이 가도 되겠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니 타란다.
왕재수~~~~~~~~~~~~~~~~~~~~~~~~~~~~~~~~~~~
흘림골 입구에 내려 다 같이 간단한 몸풀이 체조를 하는데 옆에서 나도 흔들흔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신선한 공기, 새소리, 물소리....
천천히 오를 작정으로 나선 길이기에 먼저 슬렁슬렁 올라가야 했기도 했지만 그들 속에 섞여 있음이 못내 어색하기도 했다.
슬렁슬렁 올라가다 쉬다 오르면서 보니 그들은 나보다 더 천천히 이바구 해 가면서, 설명 들어가면서 오르고 있었다.
몇 발자국 오르지 않아 민망한 폭포, 여심폭포가 나왔다.
사진만 얼른 찍고 오르니 아이들은 그냥 그대로 통과하는 모양이다.ㅋㅋ
그리고서 조금 더 오르니 등선대가 나온다.
지난 번, 5년 전인가?,엔 오색에서 올라와 등선대를 넘어 여심폭포 쪽으로 왔던 것 같다.
그때 길을 잘못 들어, 앞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통제구역으로 들어갔음, 자칫했으면 벌금 50만원을 물 뻔했었지.
등선대에 올라 사방팔방 아름다운 설악을 바라보며 서 있자니 남학생 하나가 카메라를 달란다.
두 컷인가를 찍어준다.ㅋㅋ
겁도 없는 여학생 하나가 바위 꼭대기에 서는 걸 보며 아찔~~
아이들은 "뛰어 내려~~ 뛰어내려~~"를 외치며 깔깔 웃는데...
그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내려려오다 보니 금방 오색약수가 나온다.
4시간의 산행을 마무리 하면서 약수 한 바가지 긁어 마시고 식당가로 와서 처갓집인가를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못 기억했나?
산촌식당인가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와글와글이다.
산채정식을 먹으려 하니 2인분 이상이라야 된다고 적혀 있다.
하는 수 없이 산채 비빔밥을 시키고 앉아 보니 옆 좌석의 사람들이 머루주를 나눠 마시고 있다.
나도 한 잔 주겠지.... 기다리는데 덜렁 밥만 갖다 준다.
물론 그득한 산채나물과 밥과 밑반찬들이 나오긴 했지만 웬지 아쉬워서 주인장에게 한 잔을 달랬다.
으흐~~~
달콤한 머루주 한 잔....은 사람을 빙글빙글 돌게 만든다.
이틀 밤을 샜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느긋하게 밥 먹고 시간표를 보니 또 30분은 더 기다려야 양양해 버스가 온다.
에그~~~
화장실도 가고, 손도 좀 씻고, 족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피곤한 발도 담궜다.
버스에 오르니 그때부터 졸리기 시작하네, 머루주 덕분이려니...
그리고 양양에서 부산으로~~~